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피로 애그뉴 (문단 편집) ===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68년 대선이 다가오자 "일단은" [[록펠러 공화당]]원이었던 그는 [[넬슨 록펠러]]를 대통령으로 지지했으며, 록펠러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록펠러는 1968년 3월 애그뉴에게 사전 통보 없이 언론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는 다혈질 성격이었던 애그뉴를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애그뉴는 [[리처드 닉슨]]을 간접적으로 지지했으며, 4월에 록펠러가 다시 프라이머리에 참여했을때도 그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또한 동시기 볼티모어 폭동을 처리하면서 애그뉴는 당내 진보파이지만 범죄에 강력하다는 인상을 주게 되었고, 공화당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을 봉합하고 싶었던 [[리처드 닉슨]]에게 가장 이상적인 러닝메이트감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제럴드 포드]]는 록펠러 공화당 내에서도 좌파에 속했던 [[존 린지]] 뉴욕시장을 러닝메이트로 추천했다. 하지만 [[스트롬 서먼드]]를 비롯한 당내 보수파는 이 결정에 반대했고, 특히 남부 측에서 린지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지 W. 롬니]]가 부통령이 되어야한다는 여론도 당 내에 있었지만 닉슨은 사적으로 롬니를 싫어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애그뉴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를 받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애그뉴는 메릴랜드 주지사로 지내면서 통과시킨 많은 민권 정책을 예시로 들며 자신을 공화당 진보파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효과가 없었는데, 유세마다 너무 우파적인 수사를 통해 반전 시위대와 진보파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애그뉴는 취재 나온 일본인 기자를 뚱땡이라고 비하했고 폴란드계 미국인들을 "폴락"[* Polack. 주로 폴란드계 이민자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속어이다.]이라 부르며 인종주의적 식견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빈민층 비하 논란까지 일으키며 닉슨의 지지율을 떨어트렸다. 또 10월에는 부정부패 의혹까지 터지며 위기에 처했다. [[휴버트 험프리]]는 애그뉴를 비난하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0zHyH6PHFzc|15초동안 미친듯이 비웃는]] 광고를 내보냈는데 이는 애그뉴가 당시 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10월에 제기된 부정부패 의혹이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흐지부지되었고, 애그뉴의 극단적 수사가 오히려 [[조지 월리스]]를 지지하던 보수 백인들의 표를 닉슨 측으로 결집시키면서 최종적으로 1968년 대선에서 닉슨은 아주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동안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테네시,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보수적인 남부 주들이 닉슨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인데, 이 주들이 월리스가 아니라 닉슨을 뽑은데 애그뉴가 미친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